법관임용후기
| 제목 | 법관임용 후기(2015년 일반 법조경력자, 설일영 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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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일영 판사(청주지법, 연수원 39기)
일요일 오후의 아파트 단지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아직 2월인데도 담벼락의 햇살은 따뜻하고 나른했다. 몇 차례 오르락 내리락 큰 짐을 들이고, 가재도구를 정리하니 저녁이 되었다. 허기를 간단히 채우고 소파에 몸을 기댄다. 막간의 여유가 다시금 일깨운다. 청주지방법원 판사로 나는 내일 부임한다.
작년 12월 1일 나는 법조 경력자로서 법관에 임용되었다. 정식으로는 일반 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절차라고 하고, 5년 이상의 법조경력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6월에 시작된 임용절차는 반년 가까이 진행됐다. 민사·형사 분야 법률서면 작성평가가 7월에 있었고, 8월에는 민사·형사 분야 실무능력평가 면접이, 그리고 곧이어 인성역량평가 면접이 있었다. 주변 관계자들 및 법조단체(대한변호사협회, 지방변호사회)에 의견 조회도 행해졌고, 수시로 법원행정처의 질의에 답하고 소명자료를 제출했다. 그리고 10월과 11월에 걸쳐 최종면접, 임용예정자 명단공개, 대법관회의 임명동의 등의 절차가 이어졌다.
그중에서 법률서면 작성평가와 실무능력평가 면접이 법적 소양과 관련해서는 가장 중요한 절차였고, 또 가장 기억에 남는다.
■ 법률서면 작성평가(2015년도 일반 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절차) 개요
법률서면 작성평가에서 제시된 기록은 그리 두껍지는 않았다. 판례 검색은 가능했으나 특수한 분야의 특정 판례를 알고 있는지 자체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민사·형사 기록 모두 당자자의 법률적·사실적 주장과 증거가 잘 정리되지 않은 사안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사건의 쟁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논리에 따라 서면을 써내려가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형식에 과도하게 구애될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실무경험이 축적되고 소송업무에 관한 필수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유형의 평가를 위해 준비한 기간이 길었는지, 기존의 법조경력 동안에 자문·계약 업무나 소송 업무 중 어느 분야에서 주로 일했는지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 실무능력평가 면접(2015년도 일반 법조경력자 법관임용절차) 개요
실무능력평가 면접은 먼저 제시된 사례를 각자 검토하고 이후 면접위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례를 검토할 때는 참고도서를 지참할 수 있었고 판례도 검색할 수 있었으나,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교재나 판례를 살펴 도움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 면접에서는 앞서 검토한 사례가 일종의 화두 제시로서만 기능하는 것 같았다. 첫 질문에 답한 후로는 사안이 계속 바뀌면서 질문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다루는 주제도 실체법과 절차법, 보전·본안·집행 절차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였다. 훗날 함께 임용된 법관들 중 많은 수가 이날을 임용절차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꼽았다.
임용절차 동안에 민사 분야와 형사 분야 각각의 실무능력평가 면접과 인성역량평가 면접, 최종면접 총 4번의 면접을 거치고 12명의 면접위원을 만났다. 면접에 오가는 길에 생각에 잠길 때면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궁금증이 들곤 하였다. 가끔씩 그러한 궁금증이 커질 때면 그간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거쳐 갔을 12명의 눈이 나를 잘 이해해줄 것을 바라기로 마음먹곤 하였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 실무능력평가 면접, 인성역량평가 면접은 대상자의 인적사항 없이 블라인드 방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최종면접에는 법관이 아닌 외부위원도 면접위원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나는 변호사 업무를 그대로 돌보면서 임용절차를 따라갔다.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준비해야 했기에, 막상 시간이 좀 났을 때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평가일정 전날에 급하게 들어온 일을 밤늦게 처리하면서, 내일 과연 일정에 참석할 수 있을지 걱정될 때도 있었다. 다행히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불상사 없이 과정을 마칠 수 있었지만, 준비는 항상 원하는 바에 못 미쳤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임용절차에서 주안을 두고 살펴보고자 했던 법적 소양은 방대한 법률 지식 자체라기보다는 법적 사고였다고 한다. 나로서는 법률가로서 당시 주어진 업무를 최대한 충실히 하려고 했던 것이 긴 과정을 거쳐 나가는 데에 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판사로 임용되기까지 공익법무관으로 3년, 법무법인 변호사로 3년 가까이 일했다. 지난 법조경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물론 열심히 일했지만, 조금 다른 것들도 기억에 남는다. 빽빽한 일정표 속에서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일 속에서 나를 지키는 요령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때때로 내가 힘들어 보니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 원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피할 수 없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오히려 나를 훨씬 더 키워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법률가로서의 길을 걸어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자기 삶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이다. 나도 그 과정에서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었다.
임용 후 연수를 마칠 무렵 함께 임용된 판사들의 법조경력을 셈해보니 평균 7년을 조금 넘었다. 법관임용절차에서 기록평가와 대면면접은 객관적인 판단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고, 그것만으로 후보자의 법조경력과 삶을 충분히 잡아내기에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법관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최소 법조경력은 현재의 3년에서 점차 늘어나 10년이 될 예정이다. 이러한 부분을 임용절차에 객관적이고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현재도 앞으로도 중요할 것 같다.
한때 옛날 사람들이 쓴 편지글이나 수필, 상소문을 즐겨 읽은 적이 있다. 가운데 수백 년의 시간이 놓여 있고 추구하는 이상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의 고민은 지금의 법률가에게도 가깝게 느껴진다. 그 글들을 좋아했던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글쓴이의 마음이 사로잡을 때 무엇보다 감동이 컸다. 그 글들을 찾아 읽던 그때의 마음이 앞으로도 도와주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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